스타트업은 처음입니다만...?
드디어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회사는 강남의 공용오피스에 있는데요. 반팔반바지를 입고 라운지에서 맥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을 보며 캬~저게 바로 스타트업이구나.. 싶었습니다. 저희 회사도 코어타임만 지키면 언제, 어디서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해도 ok! 옷도 편한 복장 ok! 휴가도 눈치보지 않고 ok!
자유로워진 환경만큼이나 부담도 컸습니다. 우선 스피디한 스타트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한다면 무엇보다 초고속 적응과 실무투입을 원할 것 같아 '180도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스스로 걱정이 컸습니다. 면접에서도 받았던 질문이고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출근은 결정되었고, 무를 수도 없는걸요. 일단 출근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일주일만에 나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어차피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다
중견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사람 일하는 곳이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스타트업이 좀 더 "이렇게 해도 돼??" 같은 느낌이 들지만요^^; 그래도 대부분의 멀쩡한 회사가 실제 들어가보면 움직이는 하울의 성마냥 삐걱삐걱 돌아가긴 하니까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업무진행도 보통의 회사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매주 전사 주간회의를 진행하고, 팀주간회의를 진행하고, 협업툴에 하루 일정을 공유하고 등등.
다만, 180도 바뀐 툴 환경이 조금은 버겁습니다. 그간 최저가로 산 데스크탑으로 꾸역꾸역 일해오다가 10만행짜리 엑셀이 뻗기 시작할때쯤 pc교체요청을 하면 경영지원팀에서는 아직은 버틸 수 있다며 반려하는 곳에서 자란(?) 사람인데.....회의할 때마다 연초에 회사에서 나눠준 초록색표지의 다이어리(회의참석자의 절반은 작년 다이어리임)를 갖고가거나 본인소유의 태블릿pc를 챙겨와야 하는 그런 곳에서 자란 저에게 이 맥북이란 녀석은 너무나 어려운 놈이었습니다. 셋팅부터 파일다운, 프로그램 설치까지 정말 많이 헤맸어요. 특히 한영키랑 복붙이 여기선 커맨드키를 써야하는 게 정말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업무속도가 현저히 늦어집니다. 적응이 되고나면 맥만큼 편한건 없다던데....아직은 저에게 먼 얘기 같습니다.
또한, 전직원 채팅방이 있는 협업툴과 노션, 지라, 앰플리튜드, 태블로, 피그마, 구글시트 등 실무에서 써보지 않았던 툴들을 직접 사용해 보려니 굉장히 애먹고 있습니다. 특히, dba에게 매번 요청했으나 묵살당한ㅠㅠ 마케터에게도 db접근권한을 달라는 말은 이곳에선 꺼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데싸분이 입사 첫날 바로 권한을 주셔서 마음껏 직접 테이블을 열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만큼 공부해야할 것이 산더미입니다. 저는 일부러 10월 중순까지는 주말 약속을 잡지 않았어요. 강의 듣고, 따로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공유의 세계
파티션이 없어요...옆사람 맞은편 사람 뒷사람 모두의 모니터가 훤히 보입니다. 예전에 일할 때 파티션이 모자라서 직원들의 엄청난 반발로 총무팀에서 부랴부랴 파티션을 주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저도 파티션은 물론 3m보안필름까지 야무지게 붙였음^^ 누군가가 제 모니터를 보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딴 짓 하는걸 들키는 것도 싫었고, 작성중인 기획안을 누군가 보는 것도 싫었고요.
하지만 스타트업에선 공유가 생명이라는 것! 물론 대놓고 남의 모니터 들여다보거나 하진 않지만 전직원이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투명하게 공유됩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기본으로 사용하다 보니 여기저기 회의 참석할 때도, 라운지에서 일할 때도 노트북을 가지고 다녀 사실상 파티션이나 보안필름 필요성이 없긴 합니다.
모두가 선장인 배는 어디로 갈까?
스타트업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하죠. 단순히 직급없는 님 호칭 문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본인의 업무 의사결정권자이며, 회사가 추구하는 목표와 이익을 위해서 다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조직문화요. 하지만 저는 모두가 같은 라인에 서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수평적 조직이라 해도 모두가 본인만의 자리와 권한이 있어야 하고, 좀 더 앞선 곳에 C레벨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채용했으니 그들에게 맞는 R&R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또, 큰 회사들처럼 재무팀, 인사팀 등 스탭부서가 체계적으로 구성되지 않아 대부분의 회사 운영방향은 C레벨에 의해 좌지우지 됩니다. 전직원이 다같이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한 이후 그데이터들을 갖고 키를 잡는 것이 C레벨이 해야하는 일이겠죠. 고대 아테네도 아니고 다수결 직접민주주의로 회사의 앞날을 결정하는 건 결코 진정한 수평 조직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지금 회사가 갑자기 규모가 커지면서 혼란한 시기이거든요. 저도 그 때 들어온 사람이라...이 부분이 가장 큰 우려사항이긴 합니다. 지혜롭게 잘 해결해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친절한 직원들
제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개인의 실력, 회사의 규모, 투자상황보다도 "우리회사는 사람들이 좋아요!" 라고 자랑하는 채용노션이 꽂혔거든요. 실제로 와보니 정말 모두들 친절합니다. 인원수가 적어서 더 그런걸까요? 라운지에서 처음 봤는데도 간식을 나눠주시고, 메신저로 귀찮게 물어봐도 친절히 대답해 주십니다. 직원수가 수백명을 넘어가다보면 신규입사자가 들어와도 우리팀이 아닌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건너건너 '00팀에 신규입사자 들어왔대~' 정도의 관심만 가질 뿐이지, 직접 업무요청하거나 회의를 하지 않는 이상 대화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로비에서 마주쳐도 이 사람이 우리회사 사람인지, 다른 회사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인사없이 지나치기도 하고요. 물론 저도 그런 쌀쌀맞은 사람 중 한명이었을 겁니다. (반성합니다ㅠㅠ)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걱정반, 또 개인적으론 얼마나 성장할지 설렘반입니다. 아직까진 일하는 게 재밌고 출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부디 이 즐거움이 오래가길 바라봅니다.